여행(걸어서 세상속으로)

해송 길을 나섰다 ( 지리산둘레길 3 )

海 松 2017. 9. 24. 10:48




해송 길을 나섰다.

 

 

최근 외롭게 된 추암도 위로 하고

금년이 3년째인 지리산둘레길 답사도 할 겸

해송 길을 나섰다.

 

첫날은 진도에서 추암과 내 차로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를 3시간 남짓 달여

경남 하동군에 도착 그곳 송림공원에서 처가 미리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하동 송림공원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소나무 숲 중 가장 규모가 커 보였다.

소나무 수령도 족히 200년 이상은 되어 보이고 분포한 면적도 넓은 데다가

섬진강 하구의 모래사장과 잘 어울러진 풍경은 눈요기 감으로도 한 폭의 그림만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화개장터에 갔더니 일요일이라 관광객도 많았고,

위풍당당한 지리산 자락이 근거리에서 장터를 감싸고 있는데다가 섬진강 하류의 마지막 큰 물줄기가 합류하기 때문인지 범상치 않는 기운이 감돌아 충만했다.

이래서 조선 5대 시장이었다고 자랑하고 있을까!


명당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기분도 좋아져 하루 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차량에서 숙박을 하게 될 경우 필수 고려사항은 일단 생활 수와 핸드폰 충전을 위한 전기

공급이 원활해야 하므로 사용이 편리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찾아 정차를 하고 보니,

경남 제일의 환경 평가를 받았다는 자랑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지리산둘레길 종주를 위한 답사지만 부수적으로는 처음 가보게 되는 하동 화개장터와 법정스님이 안치된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노래로 화개장터를 널리 홍보한 가수 조영남씨의 갤러리도 가 보았다.   

사람이 살면서 별의 별일을 다 겪게 되지만

자가 붙게 되는 이력은 본인은 물론 펜들의 가슴까지 크게 멍들게 한다는

측면에서 공인의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절감했다.

 

작년과 그 작년에 지리산둘레길 3구간까지를 마쳤으니 금년에는 4구간을 타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하동 쌍계사 가기 전에 있는 신촌리 중촌 부락에서 구례방향으로 타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지나도 포장된 임도 가 지루하게 계속되어 이번 코스는 이렇게 끝날 것이라는 예감이 아쉽게도 적중하고 말았다.

산행 길 내내 길 양 옆에 줄지어선 밤나무는

비록 가시 돋친 옷을 입었스대 속살만큼은 일품이라며 뽐내는 나도 표 밤알을 줍는 재미가

솔솔 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가탄까지 5.6km 3시간이 넘도록 밤도 줍고 잠도 자는 등 갖은 해찰을 부리며 산행을 마치고 버스로 원점으로 돌아와 평사리 최참판 댁 구경을 나섰다.

 

옛날부터 부자 3대가 어렵다는데, 무려 300년 넘는 부의 대물림은 어쨌길래 가능했던 것인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평사리 일대 지형은, 사람도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명당 설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완독했던 옛 기억을 되살리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마지막 답사지인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 나섰다.

구비구비 물결치며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 변을 따라 섬진강 시인 김용택을 떠 올리며 시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되물어 보며 마지막 코스로 불일암을 선택한 이유를 추암에게 설명하자 사려 깊은 배려에 고마움을 표한다.

 

짝을 잃어보지 않는 사람이

혼자된 사람의 슬픔을 헤아려 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로

멍멍한 가슴에 또 한번의 멍을 때린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간의 한계라지만

하필 왜 내가 먼저냐는 추암의 반문에는 유구무언,

그러나 우리 모두는 시차만 달리할 뿐

한 손에 잡힌 막진 손금처럼 갈 길은 오직 한 외 길 뿐이라는 말로

위로를 하며 주암땜을 지나 송광사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진다.

 

여관에서 하룻밤을 편히 잤더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송광사는 사찰규모에 비해 인적이 드물다.

그러나 산세와 물줄기는 대 사찰이 멀리 있지 않았음을  알리는 듯,

구비 쳐 졸졸거리다 쉬어가는 물 웅덩이에는 내 마음도 편해 졌다.

대웅전에 들어오기 전에 불일암 가는 길을 보았으나 본 사찰을 구경하고 내려 오다가 들릴 생각으로 지나쳐 올라갔다.

 

사찰이 한 공간에 규모 있고 밀도 있게 건축된 것에 놀랐고, 웅장하면서도 특이한 대웅전 건축양식에 또 한번 놀랬으며 사찰의 모든 길 바닥은, 경 내외를 불문하고 일체의 포장을 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흙 길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불일암 안내문을 따라 오솔길로 들어서니 무소유의 길이란 안내문이 반긴다.

흠모했으나 살아생전에 뵙지 못한 법정스님을 사후에라도 만나게 된다는 설래임에 가슴은 두근반 서근반 비록, 딸 결혼 때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불교가 모태신앙이었고 사명대사나 서산대사의 책들을 읽으면서 불교에 심취했던 젊은 시절부터 개종하기 전까지 속세 인연을 접고 산속에 사는 스님들을 무척이나 동경했던 추억들이 새롭기만 하다.

 

추암에게 이번 여행 끝에 불일암을 찾으려 했던 것은, 지금 이순간까지의 속세 인연일랑 접어두고 스님의 무소유 만을 생각하며 사색해 보자는데 뜻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무소유 정신은 마누라를 갑자기 잃은 추암에게 필요한 주제이기도 했고 또 그에 못지않게 스님의 글과 정신세계를 추종했던 나로써는 성철스님이 남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는 말씀에 이은 일 번의 철학이기도 했다.

 

스님이 계시는 불일암은 시골 텃밭 처럼 소박하여 편하면서도 안온한 분위기다.

생전에 손수 만드시고 애용했다는 참나무 의자와 스님의 흰 고무신을 보고 있자니 의식주 해결 시 자연손상은 최소화 해야 한다는, 내 생각과 일치하는 검약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 공감했고, 평소 좋아하시던 후박나무 밑에 수목장으로 간소하게 묻힌 것을 직접 보고 있자니,

나도 죽으면 일체의 흔적을 남기지 말고 아버지 어머니가 가꾸시던 뒷골 텃밭에 내 유골을 뿌려,

자연으로 흔적 없이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다.


그리고 스님 앞에 머리숙여 눈을 감으니

스님의 말 빚만 지고 간다는

말씀이 무의식 중에 떠 올라서일까,

생각지도 않았는데

처를 비롯한 모든이에게 고운말을 써야겠다는 각오가 영감처럼 떠 올랐다.

이게 스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릿문을 나서니 눈물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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