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이가 자기 동창회에 참석하여 보니,
나만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도 덩달아 같이 나이들어 가는 것 같아
외로움이 덜하는 것 같더라는 글을 올려,
형도 공감을 했다.
그래서 이역 또래들하고 자주 어울리는 것이 좋지 싶다.
같은 시대를 살기 때문에
생각도 외모도 같은게 많으니 부담없이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정신 건강에도 매우 바람직 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백동 홈피가 없어졌지만,
내가 일시 관리했던 싸이 월드에 당시 공감이 가는 글들이 남아있어
퍼와 보았다.
형은 백동 홈피 등에 올렸던 글들을 두길 잘 잘했다고 본다.
지금보면 그게 다 재산으로 지금도 금쪽 같이 좋은데,
이보다 더 나이들어 지면 얼마나
소중한 재산이겠느냐 !
다음 글은 양기현이에게 보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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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현이 동생 뭐 고마울 것이야 있는가.
나 좋차고 좌충우돌 덜렁대다보니 자네를 비롯한 고향 사람들도
조께 좋았을련지도 모르지 !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이 더 궐리한 표현이
아닌가 싶어,
언젠가 낙호 동생이 애향심을 키우자는 요지의 글을 올렸기에
내가 밥풀을 달았던 말이 있네.
" 고향 사랑은 나도 하기 어렵고 남보다 좀 하라고 "사정"하기 또한 더더욱 난해한 문제라고 말일세 "
지금껏 나도 사람인지라 나만 유별나게 백동을 사랑하는 척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싶어, 때로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없지 않아 있었네.
그러나 인생은 제멋에 살아야 신바람도 나고 결과도 좋은 게 아닌가 싶더라고.
그래서 작년 10월 공직생활 30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산천의 음덕과 어르신들의 염려지덕이 아닌가 싶어, 국회의원도 아닌사람이
어줌짢게 고향분들에게 술 한 잔도 대접해 보고 말일세.
그리고 난후 정년퇴임이라는 큰 강을 요량지게 건너 볼 생각으로 내딴에는 큰마음 먹고
강원도 산골을 누비며 고뇌에찬 장고를 거듭해 보았으나.
명답은없드라고 !
지놈이 죽지 않고 살아 남으려면,
현실에 순응하며 능력껏 열심히 사는 수 밖에 별 도리 없다는 사실에다
증명을 남기라고 해서 목도장을 찍으려고 했더니 지장을 찍으라고 눈알을 불아려
옜다, 모르겠다 싶어, 눈감고 손도장 찍어 주고 뒤도 안돌아 보고 하산해 버렸네.
고승, 성철스님도 평생을 가족 버리고 토굴 속에서 뭣좀 깨달아 보겠다고
맹물 먹고 참선해 보았지만 남긴 유언이 무엇이던가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이게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싶어 !
방황했던 지난 4개월이 아깝기로 따지면 한량없으나.
생로병사라는 인생순리를 거역 못하는 중생이라 선택의 여지없이 내 몰이긴 했으나,
그냥 죽을 순 없는 일, 짹소리는 해보지 싶어
백동홈페이지 푼순이 기자 노릇 열심히 하며
고향사랑 파이나 키우는 재미로 살아보기로 작심을 했고,
내 2기 인생은 남을 의식하기보다 내 멋에 살기로 했다네.
기현이 동생 !
사랑해,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