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의 고희
아버님이 제 곁을
떠난 지도 어언 30년
제가 하루 밤만 자면 70 이 됩니다.
제 나이 36살에 아버님 돌아 가시고
많은 동생들과 알콩달콩 산 세월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며느리 사위 보고 손주 재롱에
행복에 겨웠던 즐거운 일
경찰정복을 입고
성당에 들어가는 바람에 신부님이
놀랐던 가슴 시린 추억
아련한 기억 속에
훌쩍 내 곁을 떠난 줄 알았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구비구비 애환도 많고
아쉬움도 컸던 것 같아요.
“아버님이 살아 생전에 여름은 여름답게 덥고
겨울은 겨울답게 추어야 풍년이 든다고 하셨잖아요”
아버님의 그 말씀이 제 인생의 좌표가 되어
오늘의 저를 있게 했다고 봅니다
제 나이 마흔
상도4동 파출소장 시절
" 아버님 산소에도 이런 눈이 내릴까요 "
라는 회한의 시를 올린 이후
이번이 두 번째 글입니다
저와 달리 말수 적으셨던 당신께서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나시면서도
유언 한마디 안으셨지요
당신의 그 깊은 뜻을 깊이 새겨
저도 동생들 열심히 챙기며 살았으나
아버님 만날 날이 가까워지니
잘못한 일만 생각나는 게.....
역정은 듣지 않을지 걱정이 큼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자신 있게 내 놓을 두 가지
보따리는 준비 하고 있답니다.
첫째는 동생들에게 물질적인 보탬은 주지 못했지만
몸과 마음으로 동생들을 보살피는 일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안았다고 감히 자부 할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십일시 장에서 10 원짜리
막걸리 한 잔 안 사 잡수신
당신의 가장 큰 유산인
근검절약 정신만은 초지일관 잘 지켜
비록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밥은 먹고 살고 있고요
퇴직 후에는 뒷골 아버님 유답에 움막을 치고
자연과 더불어 살다 보니 마음도 부자가 되었답니다
아무쪼록 남은 여생도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 아들로써 한 점 부끄럼 없게 살 수 있도록 지켜 봐 주시고
우리 형제 모두 한결같이 건강하여
제 앞에 먼저 떠나는 이 없도록 만복을 주시고
저도 대욱이 엄마에게 잘 살아 보자는 과욕 때문에
못다한 사랑 다 주면서 알뜰살뜰
정겹게 살다 아버지 곁으로 갈 것을
약속해 봅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정유년 마지막날에 큰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