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코로나가 확진되자,
나는 짐을 싸 들고 안양 4동 소재 동생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행히 동거한 마누라는 걸리지 않았음으로
전염을 막기 위해서였다.
일 주 일 동안의 격리 마감 일은
지난 3월 14일 24시 였으나 확진 날로부터 10일 까지는 코로나 균이 나온다는 말을 들어서다.
이번 격리 기간을 통해서 나는 많을 걸
배우고 느꼈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30 만명 대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서도 주변 사람들은 이상이 없었고 우리 가족들도 모두 건강한데 유독, 새끼들에게 조심하라고 매일
잔소리 하던 내가 제일 먼저 걸려 체면을
구기고 말았으니 환자 대접을 받기는 꺼녕,
자칫, 마누라에게로 옮기는 날에는....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는 것이 그남둥 본전치기라도 하지 싶어, 짐을 싸들고 독방에서 9일 동안 현대판 생 고린장을
자청하며 본의 아닌 체험을 해 보니
델타 보다는 오미크론의 치명율이 낫다고는 하지만
미증유의 전염병이라
긴장감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제일 불안했던 것은 동생도 없는 방에서
혼자 투병을 하다보니
만약 응급상황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오롯히 혼자 고통을 감내해야 되는 입장이라
통증이 심할 경우도 문제였지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감당하기
버거운
많은 낫수에
의식불명이라도 된다면,
꼬리를 무는 잡념과 망상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불안한 심사를 달래는 것은
뭔가에 집중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궁리 끝에 체험기를 써 보기로 했던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은 적중하여 글을 쓰는데 집중하다보니
불안과 잡념이 덜 하거나
사라지는 효과를 보게됨으로써 병을 이기는데
보탬이 되고, 체험기를 남기게되어
여간 뿌듯한게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귀한 소득은
가족들의 애뜻한 사랑과 소중함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마누라는 한 시간이 멀다고
방은 따뜻하며 잠자리는 괜찮은지
먹기는 제대로 하는건지, 손수 뒷바라지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46년 내공으로 힘을 보태주고,
아들 딸 부부는 손녀들을 앞세워
조석으로 재롱 떠는 문안 인사와 함께
먹어야 버틴다며 택배로 먹을 것을 눈물 겹도록
챙겨주고,
형제들은 형제 단톡 방에 격려 또 격려로
응원을 아끼지 않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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