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만물상] 팽목항 주민들

海 松 2018. 9. 14. 10:58

[만물상] 팽목항 주민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도/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시인은 수학여행의 꿈에 부풀어 세월호에 올랐다가 숨진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국민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 대부분은 사고 해역에서 25㎞ 떨어진 팽목항에서 가족 품에 안겼다. '팽목항' 하면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게 됐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사건 당일부터 구조 요원과 자원봉사자, 유족 등 수천 명이 붐볐다. 그러다 그해 11월 세월호 수색이 마무리되면서 한적해졌다. 실종자 9명을 남긴 채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 컨테이너 숙소에서 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작년 4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옮기고 나서야 이곳을 떠났다. 팽목항 200m 방파제 길 양편엔 지금도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이 걸려 있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에도 노란 리본이 새겨져 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세월호 유족들은 선체 인양이 마무리되면 팽목항 분향소를 철거하기로 진도 주민들과 약속했다. 유족들이 지난주 분향소에 걸린 희생자 사진을 정리하면서 약속이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일부 유족과 광주·전남 지역 노조, 시민 단체가 이 자리에 기념 공원을 조성하라며 분향소 철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2020년 9월 완공 목표로 팽목항 선착장에 새 여객 터미널을 짓는 진도 주민들의 숙원 사업도 불투명해졌다. 주민들은 "세월호를 위해 4년 넘게 참았는데, 우리도 이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상갓집 분위기 속에 4년 반을 견딘 팽목항 주민들이다. 분향소 맞은편에 사는 중학생은 심할 때는 밤잠을 못 이루고 열이 올라 공황장애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관광객이 끊긴 팽목항에서 낚시점, 식당, 매점 장사가 될 리 없다. 우울증에 안 걸리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9·11 테러를 겪은 뉴요커들의 트라우마와 비슷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사고 현장 근처에 살거나 출퇴근하던 시민 수천 명 이 9·11 사건 10년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고 보도했다.

▶팽목항 부근엔 2021년 3월 희생자 추모 공원이 포함된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선다. 재작년 팽목항에서 4.16㎞ 떨어진 곳에 '세월호 기억의 숲'도 들어섰다. 이만하면 희생자를 추념하는 공간과 정성은 소홀해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2/20180912038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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