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디지털콘텐
동행 중에는 “평냉(평양냉면)은 생전 처음”이라는 20대들도 있었다. 그들은 “특이하긴 한데, 영 심심하다”며 육수에 식초·겨자와 다진양념을 풀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어, 평양냉면은 그렇게 먹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11년 전 기억이 떠올라서다.
2007년 6월, 북한이 내금강 관광코스를 처음 열었을 때 취재를 갔다. 당시 금강산 옥류관(평양 옥류관의 분점)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남한식으로’ 식초를 넣다 직원에게 면박을 당했다. 그는 젓가락으로 면을 들고 식초를 쳐야지, 육수에 식초를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아무리 평양냉면 자부심이 높다 해도 먹는 법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몇해 전부터 SNS를 달구고 있는 ‘면스플레인’(평양냉면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는 태도, 남자[man]가 여자에게 잘난 체 설명하는[explain] 태도를 비꼬는 ‘맨스플레인’의 패러디) 논란을 지켜본 소감도 비슷했다.
‘메밀 함량이 낮은 것은 엉터리’라거나 ‘가위로 자르거나 쇠젓가락을 쓰면 안 된다’ ‘식초·겨자·다진양념을 넣는 건 무식한 짓’이라는 일부 평양냉면 애호가들의 주장은 또 다른 ‘냉면 교조주의’가 아닐까.
20대들과 각자 ‘자기식으로’ 평양냉면을 즐긴 뒤 정상 만찬 테이블에 올라간 평양냉면을 유심히 살펴봤다. 면발이 칡냉면만큼 검었다.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집은 물론 11년 전 먹었던 금강산 옥류관 평양냉면과도 달라 보였다. 만찬에 참석했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SNS에 “(서울의 평양냉면과 달리) 면이 생각보다 질겼다”는 글을 남겼다.
음식은 문화고, 문화는 기호와 취향의 산물이다. ‘불변의 진리’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달라지면 음식 맛과 먹는 방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킬 것은 지키되 변화를 받아들여야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 냉면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대 차이,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상회담 전후(지난달 27~29일) 모 신용카드사의 평양냉면 가맹점 카드 사용량이 직전 4개 주보다 80% 늘었다고 한다. 특히 20대의 사용 증가율이 타 연령대를 압도했단다. 고무적이다. “한 문화권에서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동일한 살과 피를 만드는”(주영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법이니까. 평양냉면 신드롬을 환영한다. 하지만 북이든 남이든 ‘면스플레인’은 사절이다.
김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