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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새풀( 백동홈피에서 지워진 글임 )

海 松 2011. 1. 28. 14:15

 

 2011년 구정을 앞 두고 다음 글을 백동 홈페이지에 올려 보았으나

올린지 불과 몇 시간만에 지워지고 말았다.

카페지기가  말 한마디 없이, 왜 ? 지웠는지,

서운한 마음을 금 할수가 없다.

지워버린 즉시 진의를 알기 위해 수차 전화를해 보았으나 전화도 받지를 않았다.

그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 두고 볼 생각이다.

 

납득이 가는 해명이 있기까지는 백동홈피를 보지 않기 위해

내 즐겨 찾기에서 지워 버렸다.

 

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

 

구정은 뽀짝뽀짝 다가오는데,

우리 홈피에 글을 올린지가 언제였던가......

묻지도 않는 책임감이 앞선다. 누가 글을 올린다고 반겨주는 이도 없고

안올린다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주책인지 모르겠다.

 

저 멀리, 아련하기 만한 고향생각이,

명절 때만 되면 느닷없이 나타나 그리워지고 가고 싶어지는 것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나 남쪽에 고향을 두고 온 우리들이나 오매불망

고향을 그리며 사는 마음에 무엇이 달을 수가 있을까!

그저, 그립고 가고 싶을 뿐이다.

 

매년 우리 홈페이지 관리비를 부담하고 무시로 올라오는 잡글을 수시로 제거하며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는 양수길 회장님에게 다시 한 고맙다는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

 

 

  샛골서 부는 산들바람이

아랫들 거친 바람에 휘둘려 샛바람으로

주르륵 단비를 몰고 오다

 

끼억끼억 기러기 찬 서리 불러

 

대부동에서

한오바람으로 몰아치며

길 없는 길에 눈발이 설설하여도

 

때 되면 돈부동엔 소쩍새 울어 주고

용굴동에 안개가 끼어

산야는 퍼레지기만 하드라

 

타관을 돌고 돌며

돈에 얽매여 산 세월

 

청춘은 가고

그리움만 남았어도

 

그 시절 그 바람결에

소쩍새 울어 꿩은 날고

질바닥 바라구 독새풀은

자라고 있을 것을........................

 

 

 

 

 

오늘은 윗동네 원용이 형님에 대한 애잔한 추억을 몇 가지 되새겨 볼까 한다.

원용이 형님은 나보다는 대충 6년 쯤 연상으로 기억이 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성장과정에서 6살의 나이 차이는 터울이 크기는 하여도 알콩달콩 공유한

유년시절추억이 아련하여 다른 세대 형님들 보다 더 그립고 보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보다 2~3살 더 먹은 바로 위 형님들은 맨날 같이 놀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또 나이 차이가 적다보니 세상 물정도 우리들도 보다 특별히 더 안다고 할 수도 없어,

마음적으로 얼른 승복도 안 되고, 힘으로 붙어 본들 백전백패겠지만,

몽이가 나면 터질 때 터지더라도 한번 질러 버려야 속이 시원 할 것 같은 억눌린 감정이 많고,

 

바로 위 형님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도 층층시하 형님들 속에서 이유 없이 터지고 뺏기며 살아온 설음을,

미운오리 새끼 같은 바로 아래 또래인 우리들에게 한 풀이하여 학습효과를 내고 있는 반면에,

 

6년 연상의 형님들은 우리들이 1학년일 때 6학년이 되어 날라 다닐 뿐만 아니라,

아는 것도 우리들보다는 엄청실이 많아 눈길만 스쳐도 서릿발 같은 상명하복의 관계가 확립 될 수밖에 없어,

존경심의 발로가 되고,

 

어쩌다 우리들이 바로 위 형들로 부터 터지기라도 할라치면 6년 연상의 형님들이 해성처럼 나타나,

우리들 편에 서서 일방적으로 인민재판을 해주니 우리들 입장에서는 구세주요, 영웅 일 수밖에......................

 

이런저런 성장기의 영향으로 인해 유년기 추억이 전무한 10년 연상의 형님들 보다,

6년 연상의 형님들이 생각나게 되고 그런 형님들이 영원히 곁에 없다는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오늘처럼 그리워지는 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형님들에 대한 평가는 공부를 때나게 잘했다거나 아니면

싸움을 잘하기만 하면 요새말로 짱이요, 우상이었다.

 

그래서 싸움을 잘 했던 원용이 형님은 우리들의 대장이요 우상이었던 것이다.

 

원용이 형님이 공부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싸움하나 만큼은 넘볼 자가 없을

정도로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달리 하얀 피부에 얼굴도 야무지게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입고 다니는 옷도 맵시 있게 깔금했고, 성깔도 불같이 무서웠으며

우리들을 다루는 솜씨 또한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용이 형님 앞에서 섣불이 까불다가는 시체 말로 뭣나오게 터지니 마음약한

우리들은 지러 겁 먹고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왕따를 안 당하니 설설 길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