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새풀 원본

海 松 2013. 4. 2. 17:27

 

  2011년 구정을 앞 두고 다음 글을 백동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불과 몇 시간만에 지워지고 말았다.

카페지기가 말 한마디 없이, 왜 ? 지웠는지,

서운한 마음을 금 할수가 없다.

 

지워버린 즉시 진의를 알기 위해 수차 전화를해 보았으나 전화도 받지를 않았다.

그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 두고 볼 생각이다.

 

납득이 가는 해명이 있기까지는 백동홈피를 보지 않기 위해

내 콤퓨터 즐겨 찾기에서도 지워 버렸다.

 

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s

 

 

 

  구정은 뽀짝뽀짝 다가오는데,

우리 홈피에 글을 올린지가 언제였던가......

묻지도 않는 책임감이 앞선다.

누가 글을 올린다고 반겨주는 이도 없고

안올린다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주책인지 모르겠다.

 

저 멀리, 아련하기 만한 고향생각이,

명절 때만 되면 느닷없이 나타나 그리워지고 가고 싶어지는 것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나 남쪽에 고향을 두고 온 우리들이나 오매불망

고향을 그리며 사는 마음에 무엇이 다를 수가 있을까!

그저, 그립고 가고 싶을 뿐이다.

 

매년 우리 홈페이지 관리비를 부담하고 무시로 올라오는 잡글을 수시로 제거하며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회장님에게 다시 한 고맙다는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

 

 

 

  독새풀

 

 

 

  샛골서 부는 산들바람이

 

아랫들 거친 맞바람에 휘둘려 샛바람으로

 

주르륵 단비를 몰고 오다

 

 

 

끼억끼억 기러기 찬 서리 불러

 

 

 

대부동에서

 

한오바람으로 몰아쳐

 

길 없는 길에 눈발이 설설 하여도

 

 

 

때 되면 돈부동엔 소쩍새 울어 주고

 

용굴동에 안개가 끼어

 

산야는 퍼래지기만 하드라

 

 

 

타관을 돌고 돌며

 

돈에 얽매여 산 세월

 

 

 

청춘은 가고

 

그리움만 남았어도

 

 

 

그 시절 그 바람결에

 

소쩍새 울어 꿩은 날고

 

질 바닥 바라구 독새풀은

 

자라고 있을 것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은 윗동네 원용이 형님에 대한 애잔한 추억을 되새겨 볼까 한다.

 

원용이 형님은 나보다는 대충 6년쯤 연상으로 기억이 되는데,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성장과정에서 6살의 연령 차이는 터울이 크기는 하지만 알콩달콩 공유한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아련하기 때문에 다른 세대 형님들 보다 더 그립고 보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보다 2~3살 더 먹은 바로 위 형님들은 맨날 같이 놀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또 나이 차이가 없다 보니 세상 물정도 우리들도 보다 특별히 더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심적으로 얼른 승복도 안 되지만, 어릴 적 한 두 살 나이 차이는 크기 때문에 힘으로 붙어 본들 백전백패겠지만,

 

그래도 몽리가 나면 터질 때 터지더라도 한번 질러 버려야 속이 시원 할 것 같은 억눌린 감정이 많고,

 

 

꺼꾸로 바로 위 형님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도 층층시하 형님들 속에서 이유 없이 터지고 뺏기며 살아온 설음을 미운 오리 새끼처럼 틈만 나면 기어 붙는 바로 아래 또래인 우리들에게 한 풀이하는 것으로 학습효과를 내고 있는 반면에,

 

 

 

6년 연상의 형님들은 우리들이 1학년일 때 6학년이었으므로

 

아는 것도 우리들보다는 엄청 실이 많아 눈길만 스쳐도 서릿발 같은 상명하복의

 

관계가 확립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존경심의 발로가 되고,

 

어쩌다 우리들이 바로 위 형들로 부 터 터지기라도 하면 6년 연상의

형님들이 해성처럼 나타나, 우리들 편에 서서 일방적으로 인민재판을 해주니 우리들 입장에서는

구세주요 영웅 일 수밖에......................

이런저런 성장기의 영향으로 인해 유년기 추억이 전무한 10년 연상의 형님들 보다,

 

6년 연상의 형님들이 생각나게 되고 그런 형님들이 영원히 곁에 없다는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오늘처럼 보고 싶어 지는 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들 세대도 공부를 때나게 잘했다거나 아니면

 

싸움 질을 잘하기만 하면 요새말로 짱이요, 우상이었다.

 

그래서 동네서 싸움을 제일 잘 했던 원용이 형님은 우리들의 대장이요 우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원용이 형님이 공부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싸움하나 만큼은 넘볼 자가 없을

 

정도로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달리 하얀 피부에 얼굴도 야무지게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입고 다니는 옷도 맵시 있게 깔금 했고, 성깔도 불같이 무서웠으며

 

애들을 다루는 솜씨 또한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용이 형님 앞에서 섣불이 까불다가는 시체 말로 뭣 나오게 터지는 판이니 마음 약한

 

우리들은 지러 겁을 먹고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왕 따를 면 할 판이니

 

고양이 앞에 쥐 신세로 설설 길 수 밖에,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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