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의 성공 비결은 "무너져도 네 꿈 따라가" 다독이는 '善한 영향력'
기성 세대가 본받아야

아버지가 아들과 대화하려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다섯 곡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1위부터 5위가 머룬파이브 노래였단다. 마린보이는 알아도 머룬파이브는 금시초문인 아버지는 그날부터 캘리포니아 출신 7인조 팝 밴드의 노래를 연마했다. 비록 나훈아 창법으로 부른 머룬파이브였으나, 아들은 난생처음 그윽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방탄소년단을 '열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나 역시 '고딩' 아들 때문이다. 변방의 언어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거머쥔 대한민국 일곱 소년을 모르고는 시절을 논할 수도 없지만, 아들의 야멸찬 면박이 오기를 일으켰다. "방탄이 왜 좋아?" "그냥." "다른 아이돌이랑 뭐가 다른데?" "춤추면서 라이브가 돼." "그게 다야?" "엄만 설명해줘도 몰라."
방탄을 열공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신문, 소설, 철학책, 유튜브까지 '교재'가 널려 있다. 이기호 소설엔 방탄소년단을 '방탕소년단'이라 발음했다가 중학생 조카에게 질책당하는 남자가 나온다. 방탄을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를 인용해 분석한 책도 있는데, 소설가 장정일이 "어쩌다 들뢰즈는 방탄소년단을 치장해주는 뽀샵 기계가 되고 말았나" 개탄했다가 팬들의 '총공세'를 받았다. 방탄 열풍에 일본에선 '탄도소년단'이 생겼다. 중국에선 '미사일소년단'이 나올지 모른단다.
조각 외모, 칼군무는 여느 그룹과 같지만, 이들의 비기(�技)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노랫말과 뮤직비디오에 있다고 했다. '아이돌을 인문하다'를 쓴 박지원에 따르면, 대표곡 '피땀눈물'은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토대로 썼다. '봄날'은 가짜 행복이 지배하는 사회를 풍자한 어설라 르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오마주한 곡. 니체와 헤겔을 인용해 방탄의 음악 세계를 분석한 미술사 박사 차민주는 이들을 "시인이자 음악가이고 철학자인 종합예술가"라 상찬했다.
물론 니체를 몰라도 방탄의 노래를 이해할 순 있다. 'No More Dream'은 꿈꾸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니(네) 삶의 주어가 되라" 다그치고, '등골 브레이커'에선 부모를 졸라 수십만원짜리 패딩을 입는 청소년들을 준엄히 꾸짖는다. 똑같은 소리를 부모와 교사가 했으면 '설명충' '선비충' 운운하며 눈 흘겼을 아이들이 방탄의 잔소리엔 손뼉 치며 열광한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방탄소년들은 예술에 가까운 소통 기술을 일찍이 터득했다. 시, 영상, 그림, 일기 등 다양한 형태의 '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인간 대 인간'으로 팬들을 만난다. 고도의 전략이자 상술이겠으나, '나 또한 그대의 팬, 그대가 오롯이 견디는 외로움과 싸움과 삶을 묵묵히 응원하는 팬'이라고 쓴 편지에 뭉클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특히 10대에게 방탄은 "수능에서 실패한 내게 '부서지고 무너져도 니 꿈을 따라가라' 위로하며 날개를 달아준" "나를 나 자체로 사랑하게 해준" "나와 같이 웃고 울어주는 좋은 친구"다.
대학 논술, 기업 면접, 경제 연구소 보고서에도 등장한 이 소통법을 앞장서 벤치마킹한 부류는 표심(票心) 절박한 정치인들이었다. 대부분 실패했다. 선의(善意)라고는 없이 독설
암호투성이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골 아프지만, 이 가사 한 줄은 건졌다. '돌아갈 수 없다면 직진!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 물론 난 여전히 방탄보다 김광석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