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있는 사람이 체제 밖에서 아웃사이더로 살면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다. 산천을 떠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떠돈 이야기들이 신화와 전설로 변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857~?)이다. 최치원을 위로해줬던 산이 아마도 지리산이 아닌가 싶다.
특히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사이의 구간에 그의 자취가 집중되어 있다. 우선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인 쌍계사 진감선사 비문을 썼다. 사산비명을 쓰게 되면서 화개 골짜기의 아름다움과 쌍계사 뒤쪽의 선가적(仙家的) 분위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쌍계사 입구에는 두 개의 큰 바위가 석문(石門)처럼 놓여 있고, 이 바위들에다가 최치원이 '쌍계(雙磎)'와 '석문(石門)'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쇠 지팡이로 새겨 놓았다고 해서 철장서(鐵杖書)라고도 불린다.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의 공간에 들어가려면 석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절 뒤로 30분쯤 올라가면 길옆에 환학대(喚鶴臺)가 있다.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위이다. 최치원이 학을 불러서 타고 갔다는 전설이다. 신선은 학을 타고 다녀야 공식에 맞는다. 옛날 선인들은 지리산을 학이 사는 산으로 생각하였다. '남비청학쌍계사(南飛靑鶴雙磎寺)'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날아간 청학은 쌍계사가 되었다'는 말이다. 쌍계사 뒤쪽 골짜기는 청학이 사는 동네였던 것이다.
환학대에서 30분 정도 더 올라가면 불일암(佛日庵)이 나온다. 해발 600m 지점의 천하 절경이다. 좌측으로 청학봉이고 오른쪽으로는 백학봉이다. 청학과 백학이 터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멀리 앞으로는 백운산이 조산(朝山) 역할을 하고 있다. 산줄기가 다른 산이 조산과 안산 역할을 해 주면 한층 더 묘미가 있다. 터와 조산 사이를 섬진강이 흘러간다. 섬진강 물안개가 저 아래쪽에서 하얀 벨트처럼 감겨 있다. 근래 이 불일암 밑의 바위에서 '완폭대(翫瀑臺)'라고 새겨진 최치원의 글씨가 발견되었다. 60m 높이의 불일폭포를 최치원이 여기서 감상했다는 자취이다
특히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사이의 구간에 그의 자취가 집중되어 있다. 우선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인 쌍계사 진감선사 비문을 썼다. 사산비명을 쓰게 되면서 화개 골짜기의 아름다움과 쌍계사 뒤쪽의 선가적(仙家的) 분위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쌍계사 입구에는 두 개의 큰 바위가 석문(石門)처럼 놓여 있고, 이 바위들에다가 최치원이 '쌍계(雙磎)'와 '석문(石門)'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쇠 지팡이로 새겨 놓았다고 해서 철장서(鐵杖書)라고도 불린다.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의 공간에 들어가려면 석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절 뒤로 30분쯤 올라가면 길옆에 환학대(喚鶴臺)가 있다.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위이다. 최치원이 학을 불러서 타고 갔다는 전설이다. 신선은 학을 타고 다녀야 공식에 맞는다. 옛날 선인들은 지리산을 학이 사는 산으로 생각하였다. '남비청학쌍계사(南飛靑鶴雙磎寺)'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날아간 청학은 쌍계사가 되었다'는 말이다. 쌍계사 뒤쪽 골짜기는 청학이 사는 동네였던 것이다.
환학대에서 30분 정도 더 올라가면 불일암(佛日庵)이 나온다. 해발 600m 지점의 천하 절경이다. 좌측으로 청학봉이고 오른쪽으로는 백학봉이다. 청학과 백학이 터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멀리 앞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