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숱한 봄꽃 중 유독 낙화조차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게 바로 동백이다. 미처 봄이 오기도 전 선홍색 꽃망울이 만개했다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그 모양 그대로 꽃송이째 뚝뚝 떨어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그런데 흡사 그 모습이 칼끝에 목이 베여 쓰러지는 군중을 떠올리게 해 섬뜩하다는 이들도 적잖다. 마침 동백이 지는 4월 즈음 비롯된 제주의 잔혹사와 맞물려 4·3을 상징하는 꽃이 된 까닭이다.
꼭 일주일 전 70주기를 맞은 4·3은 낯설기 짝이 없는 역사다.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학교 밖 어디서든 주워들은 기억조차 별로 없을 게다. 그러니 올봄 곳곳에 나붙은 동백꽃 문양의 현수막 앞에서 다소 얼떨떨한 심정이 들었을 법도 하다. 이런 이들을 겨냥해 때맞춰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을 보면 왜 4·3이 그토록 오랫동안 집단 망각 속에 갇혀 있어야 했는지 실감케 된다.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혼란기에 벌어진 처참한 대학살이 70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보수·진보 간 진영 싸움의 소재로 치부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념 대결로 분단까지 된 나라에서 4·3의 진실이 바로 서기엔 70년이란 시간마저 부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젖먹이들을 포함해 줄잡아 3만여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 비극에 대해 적어도 우리 사회가 툭 터놓고 말할 때는 됐다고 여긴다. 내일 밤 방송될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서 현기영 작가와 함께 ‘4·3이 머우꽈(뭡니까)’란 주제로 얘기를 나누기로 한 연유다.
아시다시피 제주 출신인 현 작가는 꼭 40년 전 중편 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해 4·3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이다. 당시 일곱 살 어린 나이에 고향 마을이 불타오르고 일가친척들이 목숨을 잃는 걸 지켜본 그는 오랫동안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더듬었다 한다.
차마 감당하기 힘든 슬픔은 현 작가뿐 아니라 많은 제주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심지어 자녀에게도 아픈 속내를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마저 불행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란다. 4·3을 전후한 학살 중 최대 인명 피해가 난 ‘북촌리 사건’ 이후 5년 뒤, 그 마을 주민들이 한 청년의 장례 도중 뒤늦게 설움에 복받쳐 곡을 했다가 줄줄이 잡혀가 고초를 겪은 이른바 ‘아이고 사건’ 탓도 클 게다. “입 닥치고 잊으라”는 국가 권력의 강압에 못 이겨 제주인들조차 침묵하는 사이에 4·3은 모두에게 잊힌 역사가 돼버린 거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끔찍한 일은 세상이 아우슈비츠를 잊는 것”이라던 유대인 생존자의 말을 빌려 현 작가는 “4·3보다 무서운 건 우리가 4·3을 잊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언젠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유대인들의 집요한 노력 끝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만큼 알려진 홀로코스트에도 4·3처럼 까맣게 잊힌 역사가 남아있다는 걸 얼마 전 뉴욕타임스를 읽다 알게 됐다. 2차 대전을 전후해 리투아니아에서 유대계 주민 25만여 명 중 무려 90%가 학살당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나치 독일이 아닌 주변 이웃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거다. 하지만 70여 년간 정부는 이 사실을 덮기에만 급급했고 아직 단 한 명의 가해자조차 단죄받지 않았다나.
문득 “역사란 죽은 자들에 대해 산 자들이 꾸며낸 거짓말”(볼테르)이란 경구가 떠오른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살아남은 우리가 기억하고 대신해서 말해주지 않는다면 진실은 결코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없다. 이래저래 참 잔인한 4월이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