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답사기 (1)
어린 외손녀가 더위를 피해 한 달 넘게 진도 서망 집에 있다 상경했다.
손녀가 내려오는 바람에 애견 진돌이는 개털이 날리는 등,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인적 없는 뒷골 김나현 농장으로 본의 아닌 유배를 당해야 만 했다.
산골에서 혼자 외롭게 지낸 진돌이 위로도 해주고 나도 여행 시 말동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 여행에 과감히 동참시키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지리산과 인접한 전북 진안 읍에는, 공무원시절 서울 방배동에서
친형제처럼 사이좋게 살았던 분이 상처를 하고 혼자 자리를 잡았다는 연락이 있던지라
우선, 그곳부터 가 보기로 했다.
진안을 제대로 가기위해서는 교통사고의 위험성은 다소 높지만
그래도 원거리 초행인 점을 고려한다면
88고속도로를 타는 게 좋겠다 싶어 들어서니, 이제야 2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태백산맥이라는 한반도의 큰 줄기가 영호남을 갈라 놓은 주된 원인이라고는 하나,
88년이후 지금까지 편도 1차선으로 방치된 도로 현실을 보고 있자니,
교류가 뜸한 두 지방간의 이질감 만큼이나
거리가 먼 도로라는 사실에 씁쓸한 생각만 가득하다.
진도에서 진안 읍까지는 300km가 넘는 장거리인데, 5시간 만에 집 앞에 차를
들이대자, 깜짝 놀라며 반가워한다. 밤을 새워가며 동안의 회포를 풀어가며 소주잔을
기울이다 하루 밤을 잤다.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맺었으면 평생 해로 하며, 늙을수록 같이 사는 게 바람직스러운
일인데, 남자가 여자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하고나니 가슴만 시렸다.
금년 봄에 비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손볼 곳이 많았겠지만,
여자 손길이 미치지 못한 집안 구석 구석은 시선을 주기가 민망스럽다.
본인은 대안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고는 하나
타향 !
그것도 인적 없는 외진 산골에서 남자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침표를 찍었다고나 할까 !
TV에서 보았던 자연인의 개성 넘치게 여유만만한 환상이 일시에 깨졌다.
간다고 나서자 자기가 기르는 닭도 잡아 먹고 하루 더 푹 쉬었다 가라는 것을 사양하자,
먼 곳까지 왔는데 줄 것이 없다며 텃밭에서 호박 옥수수 콩 등을 따 주는 인정을
가슴에 담고 인접한 마니산 구경에 나서자
" 앉은뱅이라도 좋으니 밥상머리에 마주보고 앉을 여자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 는 독백 같은 하소연이 발목을 잡았다.
마니산은
전북 도립공원이다.
주변 환경 또한 관광지답게 말쑥하게 잘 정비 되어 있고,
들판에 마주보고 우뚝 솟은 두개의 바위산이 한 눈에 척, 들어오는 것이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명산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현직에 있을 때 진도산악회를 결성,
한반도 남단 큰 산은 대략 섭렵했으나 아쉽게도 설악산 대청봉 등,
명산의 정상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20여분이상 철제 계단을 올라 중간 쯤에 있는 고갯마루에 쉬며 귀동냥을 해보니
두 바위 중, 암 바위는 정상을 올라 갈 수는 있으나 계단을 다시 한 번 더 이용해야 된다는 말에
전일 과음도 했고 또, 신통치 않는 허리가 걱정이 되어 포기하고 하산 하였다.
이번 여행의 침식은 내 코란도 밴 안에서 해결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기상 여건이 어지간만 하면 돈 들어가는 숙식은 자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니산에서 하룻밤을 잘까도 망설였으나, 차량 기숙 여건이 좋지 않아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남원으로 이동했다.
남원에 들어서니 안방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며 기분도 상쾌해졌다.
진안은 난생 처음 방문한 땅이기도 했고,
지인이 혼자 외롭게 사는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지리산은 자주 다녀 정이 든데다가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졌지 않나 싶다.
아무튼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둘레길 답사를 목전에 두었으니 출발지점 가까운 곳에
주차를 잘 하는 것이 급선무,
시설 좋은 캠핑카로 여행을 하드라도 첫째 조건이 근거리 생활 수는 필수요,
그 다음, 말벗이 될 만한 여행객이 있으면 더욱 좋고, 주변에는 심심치 않을 볼거리와
깨끗한 환경까지 더해 전망까지 좋다면 최고의 야영지라 할 수 있다.
둘레길 22구간 중ㅣ구간이 있는 주천면 외평마을 둘레길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둘레길 답사 안내소를 찾아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니 예쁜 아줌마가
몸에 밴 친절로 하루 100명 정도 찾는다고 묻지도 않는,
서비스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드디어 일요일 아침,
진돌이 밥을 충분히 주고 코란도에 개줄을 묵자,
낯선 곳에 또, 혼자두고 어딜 가려는가 싶어서인지 내 그림자에 눈이 꽂혔다.
20여분 남짓 들판길을 가로지르며 1구간이 15km인데, 족히 6시간은 걸어야 된다는 것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 잡는 사이, 안개가 지리산 자락을 감았다 풀기를 반복 하더니 하늘로 연기 처럼 사라지자
앞뒤로 나와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연을 단다.
그런데 들여오는 말소리는 경상도 말투 일색이다.
여긴 분명히 전라도 땅인데................
한 시간 넘게 오솔길 같은 등산로를 따라 솔 향에 취해 발은 가고,
마음에 신들린 눈은 멍때려 비몽사몽인데,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고개 숙여 인사 삼매경이다.
보행 중 우측 시야에는 민족의 대동맥 백두대간의 꽃인 지리산이 웅장한 자태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우리 민족이 배곯지 않고 자자손손 번창 할 수 있도록
한반도의 배꼽 키를 영일 없이 잡으며 자애롭게 내려다보고 있지 않는가 !
우리나라가 숱한 외침으로 부터 오늘날까지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 않고
한강의 기적을 일굴 수 있었던 저력도 어찌 보면 지리산의 어머니 같은
포근한 사랑의 정기 속에서 잉태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6.25 등, 국난의 시기 에는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못 명한 민초들에게 좌우는
물론,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죄가 있고 없음도 따지는 일 없이 엄마 품으로 감싸,
매겨 주고 재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친 놈, 아픈 놈에게는 자신의 육신을 아낌없이 내놓으며 필요한 약초를 구해 쓸 수 있도록
살과 피를 내주던 한민족 생존의 일등공신이 아니던가 !
한 때, 좌우 사상싸움에 휘둘려 빨치산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지금껏 위풍당당하게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올곧게 한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이 민족사의 산증인이신 지리산님이시어 !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드높이 받들어 흠모 합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국가를 대신해서 나라도 나서 표창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잠시 나도 모르게 흥분했던 사이, 비닐하우스 속에서 막걸리를 파는 집이 보인다.
막걸리 한 병에 단돈 이천 원이라,
참, 싸기도 하다.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나보다 10년 쯤 연하로 보이는 50대 후반 남자가
자기 술을 한 잔 하라고 권한다. 여행의 별미란 이런게 아닌가 싶어 동석하고 나니,
자기는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마누라가 이혼을 하자고 보채는 바람에 훌쩍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면부지의 초면인 나에게 서슴없이 신세타령을 늘어 놓는
인품이 싫어서 그냥 일어서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다음과 같은 훈수 아닌 훈수를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지만,
이혼은 안 하면 후회, 하면 더 크게 후회한다는 말로 대신하며
상대를 바꾸려 들지 말고 내가 달라지는 게 훨 났다 "
다음은 노치마을이다.
2시간이상 걸어오는 동안 가장 멋있는 풍경이라고 동영상까지 촬영하고,
20여분 지났는데 이번에야 말로 진짜 환상적인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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