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親舊)는
오랫동안 사귀어 친한 벗을 말한다.
타관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호칭 할 때는 통상,
친구라는 말 앞에 꼭, 객지를 붙여 "객지
친구"라고 하는 것은 고향 출신 죽마고우(竹馬故友)와
차별화시킴으로써 고향 친구의 애틋함과 두터운
신뢰를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가 2004년 퇴직 하였으니 어언(於焉) 20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퇴직 당시 자주 듣던 말이,
퇴직 하고 3년을 잘 넘기면 오래 산다고들
했는데, 백세 시대가 맞기는 맞는 건지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 싶다.
이렇게 덧 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 객지
친구라고 내세울 사람은 없고
평촌 단지네 테니스 동호회원 등, 일부
지인들만 남았을 뿐, 전부 고향 친구들 밖에 없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인지
아니면 경찰이었던 내 직업의
한계까지 덧칠된 초라한 성적표인지, 또 아니면
인생 끝자락에 서게 되면 대충 다 그렇게들
멀어지는 것인지, 아무튼 결과는 고향
친구들뿐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좋다는 고향 친구들도 나이 들면서
정기 모임이 없어지고 보니
몇 안 되는 깨벅쟁이 친구들만 소통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친구가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을 터 놓을 친구가 많다는 것은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친구 두 사람과
다툼이 있었다.
첫 번째는 한 친구가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우리 집 땅 문제에 끼어들어 주제 넘게
왈가왈부(曰可曰否)
하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었고
두 번째 건은 친구가 대화 중 갑짜기
짜증섞인 불만을 토로 하여
자존심이 상한 내가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야기된 일로, 내가 좀 참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말 다툼이 있었다.

위 두 건의 친구들과의 불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첫 번째 사례에서는
퇴직 하고나서 몇 년 동안은 진도에 많이
머물면서 틈만나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마을 노인정을 자주 들락거리며
내 깐에는 노친들을 위로 해 준다고 신경을
썼던 것에 비해
현지 친구들과의 소통은 등한시한 내 처세의
한계도 일조한 부분이 있었다고 보지만
두 번째 친구와는 초, 중등 학교를 같이 다닌
동갑네기로 그동안 너무 좋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다투고나니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 친구가 짜증스럽게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불편하게 듣고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인지, 아무튼 잠재된 감정이
부지불식간에 표출된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던 일이었지 싶다.
자세한 결산보고를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반문하듯 말하는 친구의 말투가 까칠하지
않고 고왔드라면
굳이 내가 먼저 화를 낼 이유가 있었겠는가?
내 깐에는 잘 해보자고 한 일인데 다른
친구들 처럼 고생 했다고 하던지
아니면 알았네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건 내 욕심)
평소 그 친구의 말투가 기분이 언짢을 때는
다소 투박한 말투를 쓰는 편이라 그동안
잠재 되었던 서운한 감정이 욱하는 내 나쁜
버릇과 뒤엉켜, 상승 효과를 낸 것이 아닌가
자성(自省)해 보면서 몇 안되는
죽마고우를 지키고자
하는 선한 마음에서 가볍게
터치해 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