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 함정에 빠지는 중국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주 개막되며 중국에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대거 바뀌는 20차 당 대회가 가을로 예정돼 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해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무탈하게 보장해야 하기에 중국 정부는 더욱 조심스럽다. 당 중앙선전부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지난 1월 초 일찌감치 중국 언론에 지침을 하달했다. 네 가지 힘을 써서 두 가지 사항을 잘 보도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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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에서 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발견된 샤오화메이. 원래 윈난성 사람이나 인신매매로 팔려와 여덟 아이를 낳았다. [중국 웨이보 캡처]
네 가지 힘이란 각력(脚力)과 안력(眼力), 뇌력(腦力), 필력(筆力)을 말한다. 뛰어다니며 취재하되 보도 사안을 잘 고르고, 머리를 굴려 글을 잘 쓰라는 것이다. 보도 초점은 어디에 맞춰야 하나. 하나는 중국의 경제사회 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이 안락하게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의 현실은 제로 코로나 정책과 대량 실업, 출생률 저하 등으로 어렵다.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1월 중순 밝혔듯이 “중국엔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10억 명”이나 된다. 그런데도 인민이 태평성대에 살고 있다는 투의 기사로 지면의 일정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지면 할당 지침까지 내린 상태다.
일각에서 시진핑 시대를 뜻하는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말에 빗대어 ‘신시대 중국특색 전제주의(專制主義)’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관방 언론이 인민의 실제 관심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중국에서 화제가 된 두 명의 여성을 꼽을 수 있다. 한 명은 관방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네티즌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관방 언론이 띄운 여성은 구아이링(谷愛凌). 미국에 살지만 이번 올림픽에는 중국 대표로 출전해 스키에서 두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안겨 중국의 영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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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구아이링은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중국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한 개를 따 ‘중국의 딸’로 불리며 스타가 됐다. [연합뉴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의 딸’로 인기를 누리며 광고료와 포상금 등 무려 1000억 원을 챙겼을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중국인이 구아이링 소식보다 더 관심을 기울인 여성이 있었으니, 그는 이름보다는 ‘쉬저우 여덟 아이 엄마(徐州八孩母親)’ 또는 ‘쇠사슬녀(鎖鏈女)’로 불리는 여성이다. 쉬저우 여덟 아이 엄마라는 말은 그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시에 살며 8명의 아이를 뒀다는 뜻이다. 또 쇠사슬녀는 그가 발견됐을 당시 목에 쇠사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1월 26일이다.
중국의 한 블로거가 쉬저우시 펑(豊)현의 한 판잣집에서 쇠사슬에 목이 묶여 있는 여성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다. 추가 공개된 영상에선 남편이라는 둥(董)모씨가 이 여성과의 사이에 8명의 아이가 있다고 자랑하는 말이 나오며 전 중국을 격분시켰다. 시 주석은 지난해 중국이 전면적인 소강(小康) 사회를 건설했다고 자화자찬했는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중국이 들끓었다. 놀란 펑현과 쉬저우시 정부가 1월 28일부터 2월 10일까지 네 차례 걸쳐 해명을 내놓으며 민심 달래기에나섰지만 오히려 불신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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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화메이는 지난 1월 26일 한 중국 블로거에 의해 발견될 당시 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발표할 때마다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엔 유괴나 인신매매 등은 없었다고 했지만, 중국의수천만 네티즌이 스스로 탐정이 돼 사건 파헤치기에 나서며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쇠사슬에 묶여 있던 여성은 윈난(云南)성 출신 샤오화메이(小花梅)로 인신매매 범죄조직에 의해 팔려온 것. 나이도 당초 1969년 출생에서 1977년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조현병을 겪고 있는 위험한 상태다. 중국 네티즌은 “10억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구아이링이 될 수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샤오화메이 신세가 될 수 있다”며 분노했다.
중국인이 왜 구아이링보다 샤오화메이의 기구한 처지에 동정하고 공분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쉬저우시 상급 기관인 장쑤성 정부가 지난달 17일 조사팀을 꾸려 올림픽이 끝난 23일에야 진상을 밝혔다. 장쑤성 정부는 샤오화메이가 98년 6월부터 둥씨와공동생활을 했다며 큰아들이 99년 7월 출생했다고 말했다. 또 둥씨를 학대죄로, 펑현 당서기와 현장 등을 면직 처분하는 등 17명을 처벌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중국 네티즌의 성토는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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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화메이의 결혼 증명서. 본명이 아니라 성이 양(楊)씨로 돼 있다. 중국 네티즌은 결혼증을 내준 민정부도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 바이두 캡처]
큰아들 이름이 둥샹강(董香港)인 이유가 홍콩(香港)이 중국으로 반환되던 97년에 태어났기에 그렇게 지은 것이라는데 99년에 태어났다는 게 무슨 말이냐, 이는 샤오화메이가 98년에 납치된 게 아니라 그 전에 팔려온 걸 뜻하는 데 당국의 설명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론인 것이다. 또 장쑤성 정부가 관계자 4600여 명을 조사했다는데 불과 몇 명의 조사팀 인원으로 장쑤와 윈난 등을 다니면서 7일 동안 이게 가능한 일이냐 등 각종 질의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은 결국 이 역시짜맞추기 발표라고 말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중국 관가의 고질적인 “집안의 부끄러운 일은 밖으로 알리지 않는다(家醜不外揚)”는 폐단이 작동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중국 인민의 질의는 계속된다. 1980년대와 90년대 쉬저우시가 인신매매의 집산지 역할을 해 부녀자 수만 명이 납치됐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왜 제대로 수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내몽골 정계의 부패를 파헤친다며 20년 전, 30년 전 일도 손을 봤다. 또 쇠사슬이 보여주듯 중국 농촌에 만연한 가정폭력과 이에 대한 관방의 모르쇠 태도가 중국 정부가 9년 전부터 외치는 ‘국가 거버넌스 현대화’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게 아닌가 등 질타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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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고단한 삶을 사는 노동자 중 한 명으로 지난 1월 중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웨(岳)모씨가 산둥성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온 것은 실종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이 또한 산둥성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해서였다. [중국 바이두 캡처]
특히 심각한 건 장쑤성 발표가 하나의 영상이나 녹음, 사진 증거도 없이 글로만 발표됐는데 이걸 도대체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펑현과 쉬저우, 장쑤성 정부 등이 줄줄이 인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중국이 마침내 타키투스 함정에 빠진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타키투스 함정은 고대 로마의 타키투스가 정부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정부가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모두 거짓으로 인식되는 즉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국민이 믿지 않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 2014년 타키투스 함정을 지적한 바 있다. 인민이 믿지 않으면 당의 집권 기초가 흔들린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쇠사슬녀 사건에 앞서 지난 1월 중국에서 가장 고단한 삶을 사는 노동자 한 명으로 소개된 웨(岳)모씨 사건도 중국이 타키투스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산둥(山東)성에 살던 웨씨가 베이징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실종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이 또한 그가 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산둥성 정부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2022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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