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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

海 松 2017. 12. 18. 15:36


[조용헌 살롱] [1122] 장작불 찬가

  

                 

어떻게 긴장을 푸느냐가 문제이다. 삶은 긴장의 연속인데, 이 긴장을 푸는 것이 쉽지 않다. 긴장은 하지 말라고 해도 하지만, 그 반대인 이완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 물과 불이 긴장을 풀어준다. 호수, 강, 바다 옆에 집을 짓고 살려고 하는 게 물이 주는 이완 효과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지어 놓은 관수정(觀水亭), 관란정(觀瀾亭)이 이런 맥락이다.

그렇다면 불은 어떻게 되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가 조로아스터교, 일명 배화교(拜火敎)이다. 5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가보니까 아직까지도 조로아스터교 예배당이 살아 있었다. 120㎝ 정도 높이의 돌로 된 제단에 금속의 화로가 놓여 있었고,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사방에서 이 화로의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구조이다. 밤에는 장작불을 줄이고 불씨만을 살려서 재로 덮어 둔다. 이 불 관리하는 사람은 흰옷을 입고 흰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성직자이다. 24시간 불을 관리하는 직책이기도 하다. 설교는 없고 불만 바라보면 되니 아주 심플한 종교라고 여겨졌다.

나는 축령산 황토집인 휴휴산방에서 배화교를 믿는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는 시간이 좋다. 불을 때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밝아지는 효과를 느낀다. 특히 눈 내리는 겨울이면 우선 그 장작불의 열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는 모습은 근심을 태워준다. 근심 걱정을 그 불꽃에다 던지는 연습을 한다. 걱정이 올라오면 던지고, 또 올라오면 또 던지고 던진다. 불은 근심 덩어리를 태워버린다. 유(有)를 무(無)로 변화시킨다. 불이 지닌 장점은 유를 무로 순식간에 전환시키는 능력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 육신도 죽으면 저렇게 재로 변하고 무로 변할 것이라는 점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영원할 것 같은, 무쇠 덩어리 같은 이 근심 걱정도 결국 연기처럼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이다. 장작에 타는 불이 그 이치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걱정이 많으면 사람이 어두컴컴해지고 오그라든다. 불은 어둠을 물리치고 오그라든 몸을 펴준다. 불을 보면서 신의 은총을 느낀다. 배화교 신자는 장작을 장만하는 일이 큰일이다. 시골 동네를 다니면서 담벼락이나 창고 옆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집의 모습을 보면 나는 부럽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7/20171217014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