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박수근의 그림

海 松 2021. 12. 11. 17:37

 

분단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민족미술 

정립을 위해 힘쓰던 1950년대, 한국적 유화를 구현한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박수근(1914~1965)을 꼽을 것이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바 없이 강원도 

양구보통학교(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의 작품이 최근까지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며 국민화가로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국립현대미술관의 ‘박수근-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은 174점의 유화·드로잉과 함께 

그가 손수 만든 화집, 외국 후원자의 편지, 개인전 리플릿 등 새로운 자료를 전시함으로써 박수근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2022년 3월1일까지).
   

해방 전 평남도청 서기로 일하던 박수근은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을 이어가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병행했다. 그가 만든 스크랩북 속 밀레와 고흐의 작품들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려 했던 독학의 화가 박수근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강원도 금성에서 조선민주당 대의원에 선출된 박수근은 전쟁을 맞아 국군이 입성하자 합류하여 대북 선무용 포스터를 그리다가 1·4후퇴 때 월남해 군산의 부두노동자로 생활했다. 이후 상경한 박수근은 미군의 범죄수사사령부에서 일하다가 1952년부터 미8군 PX에서 미군 초상화가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는 군소속 화가로 일했던 대부분의 월남화가들의 행보와 일치한다. 미군과의 인연은 1962년까지 이어져 박수근의 최초 개인전도 주한미군사령부 도서관에서 미국인 사서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리움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주목한 것은 1952년경부터 10년간의 창신동 시기이다. 국내외 전시에 활발히 출품하며 그려낸 청소부, 손님을 기다리는 행상, 아이를 업은 소녀와 함지박을 인 여인 등은 함께 전시된 사진작가 한영수가 찍은 1950년대 서울의 거리풍경과 닮아있어, 박수근 작품에 시대미를 더한다. 이 시기 완성된, 물감층을 켜켜이 쌓아 만든 거친 마티에르는 화강암을 연상시킨다 평가되는데 그 질감은 함께 전시된 박수근이 제작한 와당과 석물의 프로타주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틀에 박힌 미술교육에 물들지 않은 화가의 감성은 유화물감을 기운생동의 먹선과 닮은 응축된 선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찰의 석물이나 창호지의 질감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서구 안료가 갖는 이질감을 녹여낸 것이다.
   전쟁기 PX에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는 소설 『나목』(1970)에서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을 묘사하며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을 그는 저 의연한 나목처럼 살았다”고 회고했다. 박수근은 당시 화단을 휩쓸던 추상미술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삶을 견뎌내는 가난한 주변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는 그들이 학연도 지연도 없이 월남해 홀로 고군분투하던 국외자로서의 자신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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